전부터 약학과 여성인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보았는데, 한번 글로 정리해보고 싶어서 게시글을 써봅니다. 제 생각을 정리한 것이라 존대를 사용하지는 않을게요.
간질은, 간질이라는 용어가 주는 사회적 낙인이나 편견으로 인해 ‘뇌전증’으로 용어가 바뀌었다. 우매할 치(痴)에 어리석을 매(呆)를 쓰는 치매는 역시 부정적인 용어로 인해 알츠하이머 병(치매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약물학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치매는 알츠하이머이기 때문에 보통 알츠하이머로 통칭된다)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그런데 아직도 자궁은 생산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자궁(子宮)이다. 아이를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 세포를 품는 곳이라는 뜻으로 포궁(胞宮)을 사용하자는 사회운동이 많지만, 아직도 의약에서 자궁은 자궁이다.
폐경(閉經)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어감과, 끝났다는 표현 대신에 완료했다는 완경(完經)을 쓰자는 운동도 있다. 의약업계에서는 여전히 폐경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아직도 PMS나 생리통을 효과적으로 치료해주는 약은 없다. 해봐야 SSRI 중에 fluoxetine이 PMS에 효과가 있다,라는 말 정도이다. 항우울증약인 fluoxetine을 PMS에 처방해주는 의사가 있을까? (물론 없지는 않을 것이다) NSAIDs나 APAP가 생리통에 효과가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생리통에 고통 받고 있다. (생리통 약은 사람마다 개인편차가 크다. 자신에게 맞는 생리통약을 찾으려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이다.)
완경 후 갱년기 증상 개선을 위한 HRT를 보자. 완경 이후 호르몬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몸이 전과는 다른 이상 반응(수면 장애, 발열 및 심리적 변화)를 겪는 것을 갱년기 증상이라고 불린다. 이러한 증상을 완화시켜주기 위해, 약으로 대신 호르몬을 공급해주는 HRT(Hormone Replacement Therapy, 호르몬 대체 치료)가 있다. 그런데 이 HRT도 결국은 완경 전의 몸 상태를 유지해주지는 못한다. HRT의 부작용(유방암, 정맥혈전색전증 등)도 심각해서, HRT는 5년을 넘기지 않아야한다.(5년의 기한 내에서 주기적인 검진과 함께라면 HRT를 받는 것이 받지 않는 것보다 갱년기 증상 극복에 좋다. 유방암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언론에서 너무 무섭게 부풀려진 부분이 없지 않다. HRT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의견이 분분하게 갈린다.) 평균 수명은 늘어나고 있어서 여성은 월경을 하는 기간보다, 월경을 하지 않는 기간이 더 많다. 그런데도 아직도 약학은 여성의 갱년기 증상을 완벽하게 치료해주지 못한다.
HRT와 비슷하지만 다른 호르몬 피임 요법으로 넘어와보자. 보통은 경구로 먹는 알약 형태의 피임제가 많아 COCs (Combined Oral Contraceptives)라고 부른다. COC도 HRT와 비슷한 부작용들이 많다. 물론 HRT에 비해서 COCs의 부작용은 적은 편이지만, 그렇다고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작게는 오심, 월경통에서부터 크게는 정맥색전증의 위험이 존재한다. 이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여성에게만 피임제를 복용하기를 강요한다. 남성이 복용하는 경구 피임약은 시판 중단되었다. 이유는? 부작용(근육통, 여드름, 정서장애 등)이 너무 심하다는 이유 때문에! 여성들은 이미 피임약으로 그 부작용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 호르몬(중 특히 에스트로겐)에 오래 노출 될수록 유방암의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 과거에는 출생율이 높았다. 여성 한 명이 두 세명, 혹은 그 이상의 아이를 낳기도 했다. 임신 기간 중에는 몸 속에 에스트로겐이 분비되지 않으므로, 과거의 여성들은 짧게는 2~3년, 많게는 그 이상 기간 동안 에스트로겐에 노출되지 않았다. 요즘에는 비혼과 비출산을 선택하는 여성이 많아졌고, 자연스럽게 여성은 완경 때까지 계속하여 에스트로겐에 노출되게 되었다. 그렇다면 비혼비출산 여성의 유방암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 인위적으로라도 에스트로겐에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한다. 유방암의 위험 때문에 임신과 출산을 강요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아직 그런 연구는 논의 초기 단계에 있을 뿐이다.
물론 약학에서도 변명할 거리는 있다. 첫째로, 호르몬 치료는 그 어떤 호르몬 치료라고 하더라도 인체의 호르몬을 완벽하게 모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시로 스테로이드 치료도 호르몬 치료의 일종인데, 스테로이드제의 부작용은 일반 사람들도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다. (스테로이드가 나쁜 약은 아니다. 잘 사용하기만 하면 스테로이드만큼 효과 좋은 약은 없다.)
둘째로, 임상시험은 보통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데, 보통은 가임기의 성인을 선호한다. 가임기 성인 여성은 언제든지 임신을 할 가능성이 있다. 임상시험 중에 약이 태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기 때문에 가임기 여성은 임상시험 대상에서 제외된다. 임상시험 도중에 피시험자(참가자)가 갑자기 임신을 할 수도 있고, 임상시험이 끝난 이후에도 체내에 남은 약이 난소와 포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혹여 임상시험에 참가한 여성에게서 심각한 최기형성이 나타낸다면, 그때는 어찌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임상시험에 가임기 여성을 대상으로 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요소(최기형성 등)가 많고, 태어날 아이를 배려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물론 임상시험 도중에 참가자에게 피임(콘돔)을 권고하고 임신을 금지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전임상시험(동물실험 등)에서 심각한 최기형성이 발견되었거나, 태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판단된 경우인데, (대표적으로는 탈리도마이드가 다발성골수종에 효과가 있는지 확인하는 임상시험이 있다. 탈리도마이드는 다른 치료에도 큰 효과가 없는 다발성골수종 치료에 사용되는데, 탈리도마이드 치료를 받는 모든 환자는 여성과 남성의 구별 없이 피임해야한다.) 그렇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임상시험은, 가임기의 여성을 임상시험 대상에서 배제하면서 안전한 길을 선택한다.
만약 아주 조금이라도 최기형성의 이유가 있어서 남성만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이 된 약이 시장에 출시되면, 여성은 그 약을 복용하는 중에는 피임(콘돔)해야한다. 혹시 모를,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해서.
물론 모든 의학과 약학이 여성배제적인 것은 아니다. 의료인을 포함한 보건의료인, 약사, 의사 간호사, 영양사 등 의료업계에 종사하는 직업은 성별이나 종교, 인종, 신념(성정체성이나 성적지향성까지도)과 관계없이 국민보건증진을 위해야하는 직업이다. 여성을 위한 약도 많이 연구되고 있고, 특히 그 중에서도 갱년기 증상 개선은 블루오션이다. (화애*큐라던가 정*장 우먼이라던가 하는 약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약학은 아직도 페미니즘적 이슈에서는 보수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약학을 비롯한 생명과학이 사회학적인 인권 이슈에서는 가장 느린 걸음으로 걸어오고 있는 것 아닐까,
생리통으로 진통제를 먹으면 내성이 생긴다거나, 혹자는 아이한테 안 좋을 수 있다고 하는, 여성을 질책하는 그런 말은 누가 한 말일까. 왜 여성이 그렇게까지 고통스러워하며 아이를 위했어야 하는걸까. (비혼비출산을 선택한) 여성은 유방암의 위험에 노출되고, 여성은 태어나지도 않은(비혼비출산을 선택했다면 평생 태어날 일이 없는) 아이 때문에 신약 임상시험에서 배제된다.
인류의 절반이 여성이고, 그중에 또 절반은 완경 이후 여성이다. 신약개발의 임상시험이 세상의 절반인 남성을 대상으로 한다면, 세상의 나머지 절반인 여성은 과연 누가 치료해줄 수 있는 것인가.
ref.
- Cardiovascular outcomes with conjugated estrogens and medroxyprogesterone acetate JAMA 1998;280:605-13
- JAMA 2002;288:58-66, 321-33
- Nengl J Med 2016;374:1221-31
- Menopause 2016;4:417-24
- Lancet 2009;374:1243-51
- 2014 Jan 25;15:37. doi: 10.1186/1745-6215-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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